심리 상담 후기
30대 초반 미혼 남성
고등학교 친한 친구가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데, 늘 어떤 사람이든 마음속에 나도 모르는 상처가 있고, 그 상처가 나의 행동,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상담을 받으며 마음을 열고, 속 깊은 이야기를 시작하면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심적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지인을 통해 심리 상담의 좋은 점들을 많이 들었지만 막상 내가 하려고 생각하면 비용, 시간의 문제를 핑계 삼아 피하곤 했었다.
사실 상담의 시작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난 도덕적으로 또 법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저질러 왔고 결국 하늘을 손으로 가릴 수 없듯 나의 악행들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죄책감도 감각처럼 역치가 있다. 처음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무서움을 가져다주던 죄책감은 점점 내 행적이 쌓여갈수록 옅어지고 희미해졌다. 남아있던 작은 죄책감마저 스스로 벽을 만들어 가둬두고 정당화 시키려는 핑계를 만들기도 했다.
죽음을 생각했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하릴없이 걸어보고, 죽는 방법을 고민하고, 뒷수습과 슬퍼할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이런 반복적인 생각 속에서 피폐해졌고, 결국 죽어서 끝내겠다는 무책임하고 멍청한 결심마저 시도하려는 용기도 내지 못하고 포기했다.
상담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첫 상담에서 난 어디까지 나를 내 비춰야하는지 고민했다. 상담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며, 비밀이라는 것은 보장이 되는지, 된다 해도 나를 전부 보여드려야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나의 치부를 밝힐 필요가 있을지 고민했지만, 상담까지 받게 된 망가진 나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고, 나의 본 모습을 모두 말씀드리지 않으면 이 상담은 그저 또 나를 감추고 감싸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상담의 시작은 가족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잘못은 내가 했고 이미 성인이 된 내가 스스로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수렁에 빠져버렸는데 그 원인을 내가 아닌 주변에서 찾는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알고는 있지만 떠올리지 않았던 내 주변사람들의 이야기, 아버지 어머니 누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하나하나 이야기 하면서 갑자기 울음이 터질 때도 있었다. 잊고 있었지만 내가 보고 듣고 자란 많은 것들이 내게 상처가 되어 남아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했던 상처는 결국 내가 스스로 감당했지만, 그 감당은 그저 그 상처를 꾹꾹 눌러 담아 슬픈 향수로 만들어 마음 깊은 곳에 놔둔 것에 불과했다. 그 향은 나도 모르게 나의 삶에 깊이 베어버렸고 이제는 그것이 향수의 향인지, 나의 향인지 구분하지도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참으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생기는 것 같다. 부모님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가한 폭력 뿐 만 아니라 나와의 지키지 않은 약속, 부모님과의 관계, 부모님과 조 부모님의 관계, 그리고 부모님이 갖고 있는 당신들의 한과 상처.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과 한과 상처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고 동화된다. 그 강도는 희석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상처는 나에게도 온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님이 가끔 말해준 당신의 삶과 그 삶속의 상처와 한은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상처는 안고 있으면 곪는다. 마음의 상처도 예외는 아니라고 했다.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분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고 그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었다면 그 상처는 끊임없는 대화와 교감으로 아물게 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하지만 그 시작조차 힘들다. 지금까지 그저 힘들다고 넘겨왔던 일들을 상담을 통해서 조금씩 용기를 내고 달라지려 하고 있다.
난 나의 직업상 결과에 대한 분명한 원인과 논리적인 흐름이 중요하다. 상담 초기엔 뜬구름 잡는 것 같던 주변 분석에 신뢰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10회에 걸쳐 상담을 받으면서 많은 것들이 명확해지고 동시에 나아가야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길은 험난하다.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있던 전과는 다른 세상이다. 그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그리고 용기를 내어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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